누가 뭐래도,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나는 분명 외과의사로 살 것이다. 어느덧 외과의사로서 30여 년을 살아왔다. 그동안 대학병원과 중소 병원을 두루 거치며 셀 수 없이 많은 환자들을 수술했다. 어떤 날은 암을 비롯하여 충수돌기염(맹장염)에 이르기까지 하루 10건에 달하는 수술을 하느라 하루 종일 굶는 날도 있었고, 중증 외상 환자를 수술할 때는 24시간 이상 수술실에서 나오지 못한 날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환자를 수술하거나, 오랜 시간 수술하는 날이면 긴 시간 공복 상태에서 탈수가 심해졌다. 때로는 소변도 안 나오고 혈뇨까지 나타나 수액을 맞는 일도 종종 있었다. 환자들을 돌보다 보면 늦은 퇴근은 기본이고, 집에 가지 못하는 날도 다반사였다. 이제 외과의사로서의 외길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그동안 만난 많은 환자분들과 그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들을 정리하였다. 이 책을 통해 외과의사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리고, 외과가 얼마나 보람 있는 임상과목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 무엇보다 외과의사의 애환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아 외과의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요즘 왜 외과의사를 기피하는지, 또 어째서 외과병원을 찾아보기 어려운지도 알리고 싶다. 30년 외과의사 외길, 신이 주신 축복의 인생길 어려서 겁 많고 온순하며 소심하던 아이가 외과의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이의 성품을 아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어떤 분들은 과연 외과의사로서 환자들을 수술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의과대학 시절 임상실습 과정에서 여러 임상과를 체험하는 가운데, 특히 죽어가는 생명을 수술로서 살려내는 외과의사의 삶에서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인 쾌감과 보람을 맛보았던 아이는 성장한 후에도 주위의 권유와 회유에도 흔들림 없이 외과의사의 길을 고집했다. 이미 마음은 외과의사로서의 사명감과 높은 이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외과의사의 길은 시작부터 고행의 연속이었다. 일단 수련부터가 힘들었다. 외과를 선택했던 패기 넘치는 의사들조차 도중에 포기하고 다른 임상과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수련의사가 부족하니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극한까지 시험하는 듯한 혹독한 과정을 이겨내고 외과 전문의사가 되면서 어느 병원에서 일을 해도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돌보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수술을 통해 병을 치료해주는 데 온 정성을 쏟았고, 이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외과 환자들은 수술을 통해 병소를 제거하면 비교적 완치가 쉽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비록 암 환자일지라도 암 병소를 제거하여 재발 없이 치료되면 보람을 느낀다. 물론 암의 진행 상황과 환자의 상태에 따라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등을 병행하지만, 우선 원발병소를 제거하면 후속치료의 효과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성장한 아이는 이 뿌듯함으로 1년 365일 달력의 빨간 날은 없는 셈치고 휴가도 가지 않으며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수술을 시행했고, 수술 후에는 그 환자들을 돌보는데 온 정성을 다하며 오늘날까지 30여 년을 외과의사로 살아왔다. 고통에 빠진 환자를 수술하여 병을 치료하는 기쁨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 외과의사로서 내 손끝에서 환자들을 소생시킬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고, 이렇게 건강을 찾은 환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과정은 내겐 크나큰 행복이기도 했다. 이제 외과의사로서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동안 수술을 행했던 환자들과 치료하였거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환자들 중에 기억에 남는 환자들을 돌보았던 일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냈다. 이 책을 통해 외과의사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알리고, 의학도들에게는 외과가 얼마나 보람 있는 임상과목인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다. 아울러,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도 외과의사의 애환을 허심탄회 하게 털어놓아 외과의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