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권력

욕망이라는 이름의 권력

  • 자 :카트린 네이
  • 출판사 :애플북스
  • 출판년 :2012-12-03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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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은 이를 항상 꿈꿔왔던 자에게만 주어진다”

“현명한 이는 야망을 야망으로써 다스릴 줄 안다”



야심가, 직설가, 실용주의자 니콜라 사르코지.




그가 국민의 인기와 외면을 한 몸에 받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의 카리스마와 불도저 같은 추진력, 무모할 정도로 거침없는 언행 뒤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인가? 그리고 권력과 사랑을 향한 그 욕망의 정체는 무엇인가?

프랑스를 정복한 이방인 사르코지! 그에 대한 열광과 외면의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과 사랑을 향한 그 욕망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책은 사르코지 가문의 역사를 포함한 사르코지의 개인사부터 전후 프랑스의 정치사를 추적하면서 사르코지 개인의 특징, 즉 카리스마와 추진력, 그리고 젊은 ‘보나파르티즘’이라고 요약되는 실용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의 의미를 밝혀낸다. 아울러 ‘인정욕구’로 드러나는 권력과 사랑을 향한 욕망의 정체를 추적한다.





평범하지 않은 정치인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는 모든 면에서 평범하지 않은 정치인이다. 최고 권력을 꿈꿔온 사람들 가운데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정치 인생을 시작해 차근차근 권력 기반을 다진 건 사르코지가 유일하다. 지난 30년간 일손을 놓은 적이 없는 사르코지는 자신의 계획을 종합적으로 구현하기 전에 보고 듣고 배우고 읽고 고민하고 분석하고 글을 썼다. “일은 언제나 내 인생 최고의 가치였다.”

사르코지는 아쉬유 프레티Achille Peretti, 샤를 파스카Charles Pasqua, 에두아르 발라뒤르Edouard? Balladur,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등을 비롯한 여러 선배들의 가르침과 경험에서 자양분을 얻으며 이에 패기와 독창성을 가미해 자신만의 길을 만들었고 정치적 스승들을 뛰어넘었다. 그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력을 발산하며 정계에서 장거리 경주를 했고 결국 정치적 거물이 되었다.

그에게는 남다른 점이 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계획을 세웠던 이 야심에 찬 인물이 감정에, 특히 사랑에 의존적이라는 점이다. 그를 신비롭고 기이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측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인정욕구’에 의한, ‘존재증명’과 ‘부재증명’의 동시성 혹은 채울 수 없는 욕망에서 기인할 수 있다.





“현재의 내 모습은 어린 시절 겪은 수치심의 총체다”



프랑스 최초의 이민자 출신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는 어린 시절 경제적 어려움과 작은 키 등으로 열등감에 시달렸지만 이 열등감은 성공에 대한 열망과 강력한 추진력이 되었다. “현재의 내 모습은 어린 시절 겪은 수치심의 총체”라고 말할 정도다. 프랑스 정치 엘리트 대부분이 프랑스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지만 그는 파리 10대학을 졸업한 후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고 포스터 붙이기, 전단지 돌리기 등 밑바닥 일에서부터 출발,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모든 일들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훌륭히 완수했다. 결국 엘리제궁으로 입성, 프랑스를 정복한 최초의 이방인이 되었다.





‘불도저’ ‘스피드 사르코’



스물두 살 때 파리 근교 뇌이 시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한 사르코지는 스물여덟 살 때 뇌이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1993년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 내각에서 예산부 장관에 기용되며 급성장한 그는 당초 시라크 진영에서 출발했으나 1995년 대선에서 발라뒤르를 지지함으로써 시라크 진영을 벗어났다.

이후 시라크 진영의 지속적인 견제를 받으며 정치적 시련을 겪다가 2002년 시라크 재선운동을 지원, 대선에서 시라크를 압승으로 이끌어 내무장관에 기용되면서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강력한 범죄 척결, 치안 유지 정책과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 ‘불도저’와 ‘스피드 사르코’라는 별명을 얻으며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민감한 이슈에 대한 과감한 대처, 급진적인 해결 방안 제시, 직설적인 발언은 인기 비결이지만 동시에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기도 했다. 그는 2005년 파리 외곽에서 있었던 이민자 폭동사건 당시 폭동에 참여한 시민들을 ‘폭도’라고 불러 거센 반발을 샀다. 지나친 친미주의자란 비판도 들었다.





원칙을 지키는 실용주의, 젊은 ‘보나파르티즘’



사르코지의 소프트웨어에는 한 가지 꼬리표가 붙어 있다. ‘보나파르티즘’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주창한 일, 규율, 형평성, 가정 등의 가치들, 그의 권위주의적 취향, 자발성에 대한 숭배, 싸움을 자기화하여 풀어가는 방식 등은 그를 지난 200년간 국가적 무의식 속에 뿌리박혀 있던 정통 우파의 범주에 속하게 한다. 이는 재해석되고 한층 젊어진,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보나파르티즘이며 일부는 이를 ‘자유주의’로 규정하기도 한다. 원칙은 충실히 지키되 실용적인 면은 잃지 않는 사르코지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강한 정부, 시장질서, 프랑스 사회에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의 세계화 사이의 조화를 추구한다.





사르코지식 ‘팡테옹신전’



1955년에 태어난 사르코지는 양차 대전 전후 세대이자 30년 영광의 마지막 세대이다. 이 세대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고전주의 문화가 기반이었던 이전 세대에 대한 콤플렉스 없이 자라났다. 정보화혁명 이전에 태어난 이 세대는 TV 세대이다. TV 연속극 ‘티에리 라 프롱드Thierry la Fronde’가 스탕달을, 공연 프로그램 ‘오 테아트르 스 수아르Au theatre ce soir’가 코메디-프랑세즈를 대신했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었던 사르코지는 프랑수아즈 사강, 루이-페르디낭 셀린, 알베르 코헨 등 프랑스 문학계 거장들의 작품들과, (나폴레옹, 마자랭, 탈레랑, 클레망소, 드골 등) 프랑스 역사의 정치적 영웅들의 전기들이 나란히 잠들어 있는 자신만의 팡테옹신전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사르코지는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의 위대한 연사들을 자신의 연단 스승으로 삼았다. 직접 책도 쓰고 시나리오도 썼다. 한편 젊은 나이에 대통령궁에 입성한 그는 68혁명의 ‘위험하고 나약한 이상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가치들의 일부가 프랑스 사회에 해악을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현재의 모습을 한 몸에 드러내는 정치인



그의 야망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사르코지는 코르네유를 인용하며 대답한다. “내가 멀리서 왔기 때문이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의 배경은 무척 다문화적이다. 그 어떤 정치인보다도 그는 여러 문화와 인종이 뒤섞인 프랑스를 잘 살려내고 있다. 그게 바로 오늘날 프랑스의 모습이다. 사르코지는 성공적으로 프랑스 사회에 동화되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그와 그 가족들은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사르코지는 ‘내 나라 프랑스’를 숭배하면서 성장했다. RPR 연방 대변인 알랭 마를레는 다음의 일화를 소개한다. “1997년의 일이었다. 우리는 뉴칼레도니아를 방문했다. 우리 두 사람이 전부였다. 기자도 없었고 사진작가도 없었다. 니콜라는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무언가를 썼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2000명의 사람들이 가득 메운 자리에 서게 되었다. 니콜라는 마이크를 잡고 메모도 없이 프랑스에 대해, 우리가 프랑스에 대해 가져야 하는 애국심에 대해 한 시간을 이야기했다. 그 나이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격정적으로 연설했다. 굉장히 훌륭한 연설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눈물까지 흘렸다. 내가 그를 눈여겨본 건 그 자리에서였다. 그렇게 사르코지는 내 마음을 휩쓸어갔다.”





“내 인생 최고의 적은 바로 나다”



사르코지는 국가를 개혁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정치에 인생의 전부를 바쳤다. 지시를 내리고 추진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는 거의 천부적 재질을 타고 났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충동적이며 끝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면 때문에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주변을 놀라게 하는 발언을 하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약속을 하곤 했다. 사르코지는 웃으며 이렇게 고백한다. “내 인생 최고의 적은 바로 나다.”





가면을 쓰지 않은 정치인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그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다스리는 그의 능력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새로운 시라크가 아닐까?’ 하지만 단검과 독약이 훈장과 위선으로 탈바꿈하는 정치계의 피렌체 극장 안으로 그는 섞여들지 않았다. 그는 가면을 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의 패를 보여주며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했고 쓸데없는 싸움은 하지 않았다. 사르코지는 말한 것만 행한 것도 행한 것만 말한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말하고 행동한 것의 이유와 방법을 말할 뿐이다. 그에겐 모든 것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치졸한 속임수 따위는 쓰지 않는다. 암시와 뒷배경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지도 않는다. 늘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보였다. 사르코지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프랑스를 혁신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고 굳건하게 믿고 있다.





인정받고 싶어하는 정치인, 사랑받고 싶어하는 남자!



외톨이로 떨어져 있는 걸 너무 가슴 아파하는 사르코지는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좋아해주길 바란다. 그는 시라크가 자신을 인정해주길 끊임없이 바랐다. 시라크가 다른 장관들과는 자주 해외에 나가면서도 자기와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는 것에 속상해했다. 그래서 그는 시라크에게 인정받기 위해 맞섰다. 그는 ‘시라크 의존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권력과 사랑을 향한 욕망은 ‘인정욕구’에서 기인한 바 크다. 그에게 있어 권력과 사랑은 ‘아버지의 빈자리’에서 비롯한 빈 공간을 끊임없이 채우고 대체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채움의 증거가 바로 ‘인정’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은 자신의 ‘존재증명’인 것이다. 하지만 사르코지의 존재증명은 ‘부재증명’일 수밖에 없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대상은 끝없이 미끄러지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대체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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