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과 ‘문학’의 옷을 벗겨내고, 쌍전의 생각 자체에 주목한다
‘권모술수’의 백과사전 『삼국지』와 ‘폭력’의 지존 『수호전』을 읽는 동안
사람들의 마음엔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중국 인문학계의 거장 류짜이푸가 펼치는 본격 쌍전雙典 비판
2011년 ‘중국 매스미디어 대상’ 선정
‘삼국지 인간’과 ‘수호전 인간’에게 보내는 편지
중국 고전소설의 백미인 『홍루몽』 해설서 4부작으로 홍학紅學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중국 인문학계의 거장 류짜이푸(劉再復·1941년생)가 『홍루몽』과 정반대의 지평에 서 있는 『삼국지』(나관중의 『삼국연의』)와 『수호전』을 정면으로 해부하고 비판해 지난 수백 년간 중국에서 이들이 미친 ‘거대한 해악害惡’을 파헤친 책 『쌍전雙典-삼국지와 수호전은 어떻게 동양을 지배했는가』를 상자했다. (원서는 『雙典批判』(2010, 三聯書店))
이 두 소설은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고전이며 『삼국지』는 집집마다 꽂아두고 보는 소설이다. 중국고전소설이지만 중국만의 소설은 아니며 한·중·일 삼국에서 매우 널리 읽혔고 동양의 전쟁·역사 판타지의 원형으로서 수많은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삼국지』는 대학에서 신입생에게 권장하는 고전 1백 권에 들어가기도 한다. 한국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수호전』의 인기 또한 『삼국지』 못지않게 지속적이고 폭발적이다. 저자가 책의 제목으로 사용한 ‘쌍전雙典’이라는 용어는 풀이하면 “두 권의 경전”인데, 이는 조금의 과장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류짜이푸는 왜 ‘쌍전’에 대하여 작심하고 붓을 들었을까? 그 이유는 쌍전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도 있겠고, 반면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이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류짜이푸가 주목하는 것은 『삼국지』가 보여주는 권모술수 숭배현상 및 『수호전』이 보여주는 폭력 숭배현상이다. 저자는 쌍전의 뛰어난 문학성 속에 녹아든 이러한 폭력성과 권모술수의 여러 책략들이 지난 수백 년간 사람들의 심성에 켜켜이 쌓여왔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급기야 “악惡도 진화한다”는 말처럼 하나의 위형僞形(원형에 반대되는 가짜)문화를 형성했다고 본다. “강탈 행위”와 “살인 행각”에 불과한 일들이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한다”는 명분 아래 행해지고 “반란은 정당하다”는 일종의 민중 이데올로기를 통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 삶아 먹거나 창자를 내거는 일이 자행된다. 또한 오로지 술책으로 상대편을 공격하고 기만할뿐 아니라, 사당死黨을 결성해 소수의 일부가 다수의 삶을 잔혹하게 짓밟는 쾌락과 성취가 『삼국지』의 그 장대한 스케일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류짜이푸의 오랜 학문적 친구이자 이 책의 서문 「‘삼국지 인간’과 ‘수호전 인간’에 대한 경고」를 집필한 린강林崗 홍콩 중산대학 교수는 쌍전의 이러한 측면들이 소설의 한 장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실질적 ‘정치 윤리’를 형성하고 이데올로기로 작용해 사람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폭력과 기만·술수가 문화 자체를 바꾸는 ‘악의 진화’를 통해 술수가 판치는 역사의 화려한 춤과 폭력적인 혁명에 대한 숭배를 만들어냈다고 강조한다.
저자 류짜이푸는 「서문-지옥문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의 주제는 ‘쌍전雙典’, 즉 두 권의 ‘경전經典’에 대한 비판이다. 두 권의 경전이란 중국 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소설로 꼽히는 『수호전』과 『삼국지』를 말한다. 여기에서 ‘비판’이라는 말은 문화비판을 가리키는 것으로 가치관에 대한 비판이며 통상적인 문학비평이 아니다. 문화비판과 문학비평은 그 개념이 서로 다르다. 문학비평은 문학의 내용, 상상력, 심미적인 형식을 고찰하는 것인 반면 ‘문화비판’은 문학작품 자체에 포함되어 있는 문화적인 인식을 다룬다.”
류짜이푸는 쌍전의 문학적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그야말로 부끄럽지 않은 문학경전이다. 『수호전』은 108명의 인물을 묘사하면서 108명 각각의 모습을 매우 잘 그려냈고, 『삼국지』 역시 제갈량부터 사마의까지 주요 인물의 이미지는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약해지지 않고 여전히 수많은 독자의 눈앞에 생생히 살아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쌍전에 실린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못하고 그대로 흡수해왔으며 그래서 이 두 소설은 중국인들에게 마치 ‘지옥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은 나쁜 영향을 끼쳐왔다는 것이다. 문학작품은 무의식중에 감화시키는 힘이 있어 독자와 사람들의 인간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바로 량치차오가 말한 ‘침浸(스며듬)’ ‘훈熏(베어듬)’ ‘제提(끌어냄)’ ‘자刺(자극하여 격발시킴)’ 등 네 가지 작용이다. 예술적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글이 정교하면 정교할수록 그 문장의 기본적인 가치관이 인류의 선에 위배됨으로 인한 독성은 더욱 클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중국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크고 광범위하게 해악을 끼친 문학작품이 바로 이 두 경전이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이들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괴하며, 잠재의식을 변화시켜 중국의 민족적 성격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소설은 중국인에게 지옥의 문이다.”
몇 년 전 저자는 「누가 중국을 통치하고 있는가」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중국은 표면상 제왕이나 제후, 혹은 총통이 통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국인의 마음을 통치해온 것은 이 두 소설책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삼국지』의 뻔뻔스런 처세학을 가장 잘 배워서 ‘성공한 제자’는 바로 중국 최후의 왕조인 청나라 통치자였다고 린강 교수는 강조한다. “만약 당시에 황태극皇太極이, 주유周瑜가 장간蔣幹을 이용한 반간계反間計(적의 간첩을 이용하는 계책)를 활용하지 않았다면 만주족은 중국에 진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명나라 숭정황제는 청나라 황태극의 반간계에 속아 변방 대장 원숭환袁崇煥을 살해해버렸다. 원숭환은 만주 지역에서 이름만 들어도 간담을 서늘케 한 훌륭한 장수였기 때문에 그런 원숭환을 죽이지 못했으면 만주족의 중국 진출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처럼 쌍전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은 사실은 매우 낯선 것이다. 그동안 쌍전에 관한 책들이 무수히 많이 나왔지만 이런 관점에서 두 경전을 분석하고 비판한 책은 거의 전무하다고 보아도 좋았다. 이런 저자의 태도에 대해 서문을 쓴 린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류짜이푸의 『쌍전』은 혼자 힘으로 그러한 문화적 현상에 맞선 것이다. ‘비록 천만 명이 말려도 나는 가겠다’고 하는 기개가 엿보인다. 그가 제시한 기본 논점은 다소 충격적이다. 『삼국지』 팬이나 『수호전』 팬에게는 일종의 경고나 다름없다.”
본문의 구성과 주요 내용
이 책은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수호전』 비판이고 2부는 『삼국지』 비판이다. 1부에서 저자는 『수호전』을 지배하고 있는 두 가지 ‘대의명분’을 짚어본다. 하나는 ‘사회적인 반란’을 긍정하는 정서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반란’을 긍정하는 정서이다. “관리의 핍박을 받는 농민이 못살겠다고 들고 일어나는 반란”과 “권력에 대항하려다가 권력에 중독되는 반란”을 구분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치적 반란이 참혹한 생존 투쟁으로 변질되고 마는 역사적 법칙을 짚어본다. ‘인간적으로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수오지심)이 없는 자들이 반란의 기치 아래 저지르는 악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재난을 불러온다. 『수호전』만큼 그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없다.
그리고 『수호전』에 나타나는 ‘욕망 부정론’에 담긴 인간본성에 대한 거대한 착오를 짚어본다. 주로 이규라는 등장인물의 여성혐오증과 그로 인한 잔혹한 살인행각으로 표출되는 이 명제는 『수호전』의 남성들을 여성들에 대한 사형집행인으로 나서게 만드는 논리를 제공한다. 나아가 저자는 ‘도살 쾌감의 심미화’ 현상, 『수호전』에 나오는 108영웅의 두목인 송강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한다. 그것은 ‘의협’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송강이 타협한 노선에 대한 철학적 분석으로 제시된다.
제2부 『삼국지』 비판에서는 권모술수의 백과사전으로서의 『삼국지』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저자가 대상으로 삼는 것은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아닌 나관중의 『삼국연의』이다. 『삼국지』의 권모술수는 유비의 유교적 술수, 조조의 법가적 술수, 사마의의 음양술, 신출귀몰한 미인술로 대별해본 뒤 삼국 영웅들 사이의 ‘의리’라는 것이 왜 문화적 위형이고, 의리의 배타성에 대한 간과가 불러오는 결과, 형제윤리가 책임윤리가 되지 못하는 이유, 관우를 숭배하는 대중심리 분석 등을 파헤친다. 그리고 제갈량으로 대변되는 ‘위형적 지혜’가 어떻게 파괴적 지혜의 경쟁을 펼쳤으며 그로 인해 지혜의 내용이 중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굴절되는 현상까지도 짚었다. 그리고 『삼국지』가 제시하는 정치투쟁의 세가지 원칙인 ‘성실성은 필요 없다’ ‘사당死黨을 결성한다’ ‘상대방에 먹칠한다’를 끄집어 내고 이로 인해 나타나는 ‘역사의 변질’ 현상을 성찰했다. 마지막으로 『삼국지』 속에서 고도의 기만술을 벌일 때 동원되는 미녀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여자가 어떻게 도구화, 물건화되는지를 짚어보고 이것을 유가의 역사적 책임과 연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