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구 중 33억 명은 도시에 산다. 인류 절반이 거주하는 도시가 지구 표면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0.2%에 불과하다. 한때 근대의 욕망을 실현하는 공간이었지만, 이제 도시는 ‘탈출’과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한적한 ‘전원’ 생활은 도시인의 새로운 로망으로 떠올랐다.
과연 도시와 전원은 화해할 수 없는가? 왜 도시는 삭막하고, 언젠가는 떠나고 싶은 공간이 됐을까? <도시 예술 산책: 작품으로 읽는 7가지 도시이야기>는 그 대표적 원인을 도시의 사물화에서 찾아내고, 도시 속 예술과 작품을 통해 도시와 도시인의 삶을 재구성한다. <도시 예술 산책>은 도시를 걸으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작품을 만난다. 그를 통해 일상이 예술이 되는 도시 속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도시를 ‘탈출’하라?
왜 우리에게 도시와 일상은 ‘예술’이 될 수 없는가?
지구 전체 표면에서 도시가 차지하는 면적은 0.2%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토록 좁은 도시에서 사는 세계인의 비율이 2007년 기준으로 50%(33억)를 넘어섰다. 2007년은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에 사는 사람이 시골에 사는 사람의 수를 넘어선 해이다. 싫든 좋든 인류의 절반 이상은 도시에서 살고, 도시는 인류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도시란 어떤 의미인가?
“도시는 인류의 나락이다.”(장 자크 루소)
“거대한 도시는 인간 영혼의 거대한 감옥이다. 새에게 새장, 동물에게 우리처럼.” (피에르 샤롱)
루소와 샤롱의 얘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도시는 ‘극복’과 ‘탈출’의 대상이다. 과거 우린 더 잘살고자 하는 욕망을 좇아 도시로 몰려왔지만, 이젠 도시를 떠나고자 하는 욕망을 묻어둔 채 현실을 ‘감내’한다. 어느새 한적한 ‘전원’ 생활은 도시인들의 로망이 되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도시 예술 산책: 작품으로 읽는 7가지 도시 이야기>에서 작가는 “전원은 좋고 도시는 나쁘다는 선악 이분법의 사고는 단견”이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작가는 도시와 시골이 배타적인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상보적인 관계이며 “그동안 우리는 도시를 만든 인간의 문제는 차치하고 도시의 병폐만 타박해왔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도시가 저주스러운 공간이 된 이유를 작품을 밀어내고 제품이 점령한 사물화(事物化·死物化·私物化)에서 찾는다.
작품은 제품으로 대체되었다. 도시 자체가 제품으로 변하고, 그 속에 사는 사람과 자연, 사건 모두 상품이 되기 시작했다. 지독한 사물화다. 어렵고 힘들게 살면서도 사랑과 정을 나누던 ‘고난의 도시’는 철저히 삶을 배제하는 ‘소외의 도시’로 대체되었다. p.160_제품, 작품을 밀어내고 도시를 점령하다
작가는 앙리 르페브르, 존 리더, 김훈, 다비드 르 브르통을 횡단하며 도시를 새롭게 읽어낸다. 작가는 인류 최후의 고향인 도시가 작품이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삶과 일상도 예술이 된다고 말한다.
기가 막힌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와, 예술이네!” 한다. 삶에 대해 “예술이네!” 하고 감동하지 말란 법은 없다. p.307_미의 일상화, 일상의 미화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작품을 만나다
<도시 예술 산책>에선 총 147개(부록 ‘동네 예술길 탐방지도’ 포함)의 공공예술을 통해 도시와 삶을 재해석한다. 이름 없는 골목길 담벼락에서 세계 유명 작가의 작품까지. 서울시민이 가장 좋아하는 공공예술 작품으로 꼽히는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앞 ‘해머링 맨’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비평한다.
우리 도시의 주요 길목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을 기념하는 조각들이 차지하고 있다. 유명조각이 늘어가는 만큼 세상은 살만해지고 있는가? 검정 실루엣은 세상의 주인을 다시 익명의 세상 사람들로 넓힌다. ‘유명인 누구’가 아니라 시대적 소명 속에 묵묵히 사는 ‘사람’ 그 자체가 세상의 주인이라 얘기한다. p.42_사람이 제일 아름답다, 조너선 보로프스키 ‘해머링 맨’
작가는 도시를 생존과 생산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삶과 일상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거리를 뒤덮은 제품과 시장으로 축소된 도시를 작품의 도시로 재구성할 때, 일상이 저주스럽지 않은 공간으로 도시는 다시 태어난다. 작가는 인간, 공간, 시간의 사이(間,간)를 채우는 관계와 소통의 예술로 도시를 재구성하자고 말한다.
몸으로 길어 올린,
도시와 예술 그리고 삶에 관한 사유와 성찰의 기록
도시엔 우리가 지금껏 눈여겨보지 않았던 예술 작품이 곳곳에 숨어 있다. 작가는 도시를 느리게 걸으며, 공공예술을 탐람한다. 단순히 눈으로 보고 머리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되새기며 일상의 미학적 전환과 미의 일상화를 강조한다.
<도시 예술 산책>은 공공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작가가 몸으로 길어 올린 도시와 예술, 그리고 삶에 관한 사유와 성찰의 기록이다. 그 매개는 단순히 세계적 작가의 작품만이 아니다.
동네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가꾼 배추밭(망원동, 공화국 리라 ‘예술텃밭’_p.292), 장애인학교 담벼락에 새긴 벽화(서울농학교, 배영환 ‘수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_p.219), ‘날라리’ 예술가들이 토끼굴에 새긴 일탈(압구정동, ‘압구정동 그라피티’_323), 아버지를 사살하고 가부장적 가치에 예술로 저항한 니키 드 생팔(과천시, 니키 드 생팔 ‘미의 세 여인’_85), 수십억을 들여 세계적 유명 작가가 만든 작품의 철거 논란(대치동, 프랭크 스텔라 ‘아마벨’_p.137) 등. 작가가 누빈 작품, 그리고 예술과 아름다움의 지평엔 위아래가 없다. 작가는 끊임없이 예술과 일상과 그리고 도시의 생성적 조화를 강조하며 다시 묻는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삶을 위한 예술보다 예술을 위한 예술에 더 많이 봉사해왔다. 그들은 유물을 삶의 맥락으로부터 잘라낸 채 일방적으로 미화시켜 소장가치를 극대화한다. 값어치는 한껏 높아지겠지만, 사물화(事物化·死物化·私物化)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묻는다. ‘죽어서 오래 사는 게 낫나요, 화끈하게 살다 죽는 게 낫나요?’ p.104_기억을 긷는 베를린 호프, 청계천 베를린광장
도시, 특히 서울에선 10분만 걸으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를 위해 <도시 예술 산책>엔 정동길, 서촌길, 인사동길 등 서울의 대표적인 9개 길을 따라 걸으며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동네 예술길 탐방지도’를 부록으로 실었다. 독자들은 동네 길을 걸으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도시와 예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도시가 작품이 되면, 삶과 일상이 예술이 된다.
더는 전원을 꿈꾸며 삶을 유예하지 말자.
‘다른 삶’은 바로 이곳, 도시에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