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브리다』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 2011년 신작!
코엘료의 ‘모든 것’이자 ‘새로운 출발’을 보여주는 작품
“지금, 당신은 몇 개의 생을 살고 있습니까?”
전 세계 43개 국가 32개 언어 출간
출간 첫날 베스트셀러 1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9288킬로미터
두려움과 떨림을 내려놓고 다시 처음으로,
한 발 한 발 몸으로 새기며 나아간 가슴 뭉클한 여정……
파울로 코엘료가 돌아왔다. 전 세계 1억 독자들은 2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코엘료의 신작을 궁금해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올해 코엘료가 들고 온 것은 놀랍게도 그 자신의 이야기다. 그렇다, 『알레프』는 작가의 길에 들어선 지 20여 년이 넘은 파울로 코엘료의 세계를 하나로 아우르는 동시에, 자신의 근본으로 회귀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터닝포인트와도 같은 작품이다. 코엘료가 자신을 전면으로 내세워 내면의 이야기를 이토록 진실하게 드러낸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일까, 독자들은 그의 신작에 뜨거운 지지와 사랑을 보내고 있다. 『알레프』는 작년 가을 고국인 브라질에서 첫 선을 보인 후 터키, 포르투갈,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스페인, 헝가리, 불가리아, 네덜란드 등에서 출간 첫날 곧바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다시 한번 ‘코엘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2006년 파울로 코엘료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 지 20년 만에 다시 순례길에 올랐다. 1986년에 떠난 ‘산티아고의 길’, 그후 삼 년 후에 떠난 ‘로마의 길’에 이어 세번째로 떠난 ‘성스러운 길’이었다. 코엘료가 ‘예루살렘의 길’이라 명명한 이 순례는 작가 자신의 블로그(paulocoelhoblog.com)에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그러나 이 순례는 20년이라는 세월을 자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경력에서 정점에 올라 있는 한 작가가 스스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음을 깨닫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오른 ‘모험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길 위에서 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꿈꾸는 이는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다
오로지 실패를 즐기는 모험가만이 생의 기쁨과 의미를 깨닫는다
“생은 죽음과 더불어 끝나는 걸까? 우리는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걸까? 이 지구로 다시 돌아오는 걸까? 『알레프』는 매우 민감한 주제인 ‘환생’에 대한 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_파울로 코엘료, ‘『알레프』의 기원’ 중에서
『알레프』는 매우 민감한 주제일 수도 있는 ‘환생’에 대한 코엘료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그는 순례 막바지인 시베리아 횡단 여행을 앞두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힐랄을 만난다. 둘은 함께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고, 그 여행을 통해 사랑과 용서, 그리고 생 앞에 놓인 도전을 극복하는 법을 배운다. 코엘료는 이 소설을 통해 낡은 일상을 벗어던지고 다시 태어나는 한 영혼과, 끝은 또다른 시작에 다름 아니라는 새로운 출발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새로운 시작은 반드시 과거를 속죄하고 바로잡음으로써만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그 과정 없이는 새 출발이란 불가능하고, 그것은 우리가 현재를 오롯이 삶으로써만 가능하다고.
『알레프』는 이런 메시지를 몸소 살아낸 코엘료 자신의 이야기라 더욱 진실하게 다가온다. 길 위에서 보낸 넉 달의 시간,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간 9288킬로미터의 긴 여정이 끝났을 때, 우리는 긴 여정이 마침내 끝났다는 감격과 함께 그 길에서 작가 자신에게 온 깨달음을 되새기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깨닫는다. 꿈을 가진 이라면 이제 다시 한번 길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그저 안전하기를 원한다면 평범해지면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실패를 즐기는 용기를 가지고 다시 한번 도전해야 한다는 것을. 실패를 즐기는 모험가만이 새로운 길을 열고, 그 안에서 생의 기쁨과 의미를 깨닫는다. 코엘료가 이 책에서 말하듯, 꿈꾸는 이는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하나의 생을 살고 있지 않다.
“안전하고자 한다면 평범해지면 되지요. 하지만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해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래서 실패를 즐기는 사람들을 찾으십시오. 실패 때문에 그들의 업적이 인정받지 못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결국 그런 사람들이고, 그들은 시행착오 끝에 그들 공동체를 완전히 변모시키는 무언가를 이루어냅니다.”
p. 130~131
나는 ‘알레프’에 있다. 모든 것이 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지점.
나는 일 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문 앞에 서 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그 문 뒤에 숨겨진 것들을 엿볼 수 있다.
보물들, 함정들, 가본 적 없는 길들과 상상해본 적도 없는 여행들을…
‘알레프’란 히브리어와 아랍어, 아람어의 첫 글자이자, 수학에서는 ‘모든 수를 포함하는 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리고 유대 신비철학인 카발라에 의하면, 알레프는 모든 문자의 영적 뿌리이자 인간의 모든 담화를 포함하고 있는 글자이다. 움베르토 에코, 헤르만 헤세와 함께 카발라에 심취한 것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알레프」라는 단편을 남겼는데,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알레프는 지름 2, 3센티미터쯤 되는 작은 구슬로, 그 안에는 불가해한 우주가 담겨 있다. 말하자면 알레프는 무한한 우주가 수렴되는 동시에 끝없이 증식하는 한 지점, 즉 ‘신’에 다름 아닌 존재이다. 보르헤스는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는 모습, 한 인간이 자신에게 숙명적으로 주어진 시공간을 뚫고 온 우주가 시간의 변화를 통해 변화해감을 목격함으로써 원인과 결과의 연쇄가 치밀한 사슬을 이루고 있다는 진리를 자각하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알레프」를 집필했다고 한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 알레프라는 개념에 근거해 우리 인간 존재가 살아가고 있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영원한 현재’로서의 시간인 알레프와, 우리가 우주와 교감하게 되는 특정한 공간인 알레프, 그리고 그 공간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이들이 발생시키는 에너지와, 우주라는 거대한 육체 안에서 함께 영적 성장을 이루는 우리 영혼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우주를 떠도는 영혼이고,
동시에 우리의 생을 살아가는 영혼이다”
『알레프』에서 코엘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몇 개의 생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 생을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코엘료는 기차의 비유를 사용해 우리 생의 비의를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은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우주 속을 나아가는 기차여행이라는 것, 신께서 어떤 이유로 그 기차를 멈출 때까지 그 안에서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가를 발견해 나아가고 그것을 살아내는 것만이 우리 생의 이유라는 것. 인간이 여러 개의 삶을 살아가고 그 하나하나의 삶이 기차를 이루는 객차이며, 중요한 것은 오직 ‘현재’일 뿐이라는 코엘료의 이야기는 커다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잃지 않아요. 그들은 우리와 함께합니다. 그들은 우리 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우리는 다른 방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죠. 나는 옆 객차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분명히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와 같은 시간에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 다른 객차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들은 거기에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개의 객차로 이루어진 기차와도 같은 것입니다. 때로는 이 칸에 탔다가 때로는 저 칸에 타고, 꿈을 꾸거나 기이한 경험에 휩쓸리면 이 칸에서 저 칸으로 가로지르기도 하는 것이죠.” p. 179~180
“모든 것은 여기 현재에 있어요.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우리 자신을 정죄하거나 구원하고 있어요. 우리는 끊임없이 위치를 바꿔가면서, 한 객차에서 다른 객차로, 하나의 평행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이동하면서, 매 순간 우리 자신을 정죄하거나 구원하고 있어요. 당신은 그걸 믿어야 해요.” p. 250
어떤 책들은 읽어야 하지만,
『알레프』는 우리가 온몸으로 ‘살아야’ 하는 책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이 설파하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몸소 살아냈다. 20여 년 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나 작가의 길에 들어섰던 그때처럼. 그는 머물러 고이지 않고 멈춤 없이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살아감으로써 우리를 독려한다. 파울로 코엘료가 독자들에게 변함없이 사랑과 지지를 받는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두려움과 떨림을 내려놓고 다시 처음으로, 길 위에서의 시간을 몸으로 새기며 나아간 여정.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시련들 안에 예기치 못한 많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련의 순간에 서로 우정의 불을 밝혀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런 깨달음과 함께 독자들은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 우리 역시 코엘료처럼 ‘순례자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아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우리 안의 중국 대나무가 언제 하늘 높이 자랄 것인지를 알려면 늘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코엘료조차 다시 길 위에 서기까지 끝없는 번민과 자기 안의 두려움을 이겨내야 했다. 이제 우리 차례다. 어떤 책들은 읽어야 하지만, 『알레프』는 우리가 온몸으로 ‘살아야’ 하는 책이다.
영적 변모의 오디세이아.
이야기의 중심에는 파울로 코엘료가 있다. 동시대의 현실에 뿌리 깊은 환멸을 느끼고, 내적 갈등에 괴로워하고,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해 믿음을 잃은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물음이자 시공을 뛰어넘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계를 두루 여행하면서 그는 자신의 전생들을 되짚고, “나의 길은 타인이 눈 속에 비쳐 보인다는 사실을, 나 자신이 원한다면 바로 그 지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길 위에서 그에게 많은 의미를 지니는 다양한 이들을 만나지만, 오백여 년 전 그가 사랑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던 한 여자와의 재회야말로 그에게 다시 깨어남과 구원의 열쇠가 된다.
_북리스트(미국)
나의 새 책 『알레프』에 대해서
『알레프』는 내가 공개적으로 쓴 첫 책입니다(많은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혼자 글을 쓰긴 했지만, 집필중에 매일 내가 느끼는 것에 대해 트위터에 업데이트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0년 3월 11일 목요일 새벽 두시, 이 책을 탈고했습니다.
2006년 나는 신의 뜻에 따라 세번째 성스러운 순례길을 떠났습니다.
내 첫번째 순례는 1986년에 떠난 ‘산티아고의 길’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한 것은 공간의 순례였습니다. 두 지점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이동한 것입니다. 나는 프랑스의 국경지대에서 오 세브레이로(갈리시아)까지 거의 6백 킬로미터의 거리를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여정은 『순례자』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1989년에 떠난 두번째 순례인 ‘로마의 길’은 시간의 순례였습니다. 실제로 로마를 향해 길을 떠난 것은 아니지만 칠십 일 동안 걸어야 할 장소를 골라야 했고, 그때 내가 택한 곳은 프랑스의 피레네산맥 지방이었습니다. 그 순례 기간에 나는 꿈을 꾸고 다음 날 일어나 꿈을 꾼 그대로 따라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그 꿈이 터무니없더라도 그래야 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 나오는 꿈을 꾸고 다음날 버스 정류장에서 세 시간을 아무 일 없이 보낸 기억이 납니다. 이 순례에서 나는 여성적 에너지와 만나게 되었고, 나는 내 안의 여성적 면모가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브리다』와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썼습니다.
세번째로 내가 떠나는 순례는 ‘예루살렘의 길’입니다. 이번에도 예루살렘까지 실제로 갔던 것은 아닙니다. 대신 시간과 공간을 여행해야 했습니다. 당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임무는 네 달 동안 집을 떠나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례중에 나는 여러 나라를 들렀지만 깨달음은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찾아왔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보름 동안 일곱 개의 시간대를 지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가는, 9288킬로미터에 달하는 길 위에서였습니다. 힐랄이라는 이름의 한 터키 소녀(진짜 이름은 아닙니다)와 함께였습니다. 그녀와 나의 이야기는 책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시간과 공간이 한데 존재하는 이 지점은 ‘알레프’라고 불립니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이것에 관한 아름다운 단편을 남긴 바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내 새 작품의 제목을 『알레프』라고 지었습니다.
이 순례를 책으로 쓰는 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이 여정을 이해하는 데 꼬박 삼 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여행안내서가 아닙니다. 물론 오랜 기간의 열차 여행이 어떤 의미인지를 묘사하기는 했지만,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내 영혼과 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긴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