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펑유란

나의 아버지 펑유란

  • 자 :펑종푸
  • 출판사 :글항아리
  • 출판년 :2012-05-03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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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두고 봄누에는 죽을 때까지 실을 뽑고,

촛불은 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촛농이 마른다고

하는 거겠지……얘야. 이번에 나를 꼭 살려내다오.

아직 책을 마치지 못했어”



소설가 딸이 그려낸, 세기의 철학자 펑유란의

순수하고도 집요한 열정의 생애




◆ 『중국철학사』의 펑유란의 생애, 국내 첫 소개 ◆

◆ 노년을 함께 한 딸이 밝히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삶의 풍경들 ◆

◆ 국내에 펑유란 소개한 정인재 교수의 ‘나와 펑유란의 중국철학사’ 게재 ◆

◆ 펑유란으로 박사학위 받은 황희경 교수의 서정적인 독후감 게재 ◆



“사람들은 생전에 펑 선생을 ‘화강암 대가리’라고 놀렸다. 그러나 화강석은 중국의 학술사에서 선생의 지위를 상징하는 것 같다. 무게가 3만 근이나 되는 화강석을 범인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_ 펑이다이



“펑 선생을 초월할 수는 있지만 건너뛸 수는 없다. 후세 사람들은 펑 선생을 압도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선생을 거치지 않고 돌아서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_ 왕하오



펑유란은 누구이고, 『중국철학사』는 어떤 저술인가

『나의 아버지 펑유란』은 2002년 중국에서 출판된 ‘다샹大像인물 시리즈’ 중 하나인 『馮友蘭: 云在靑天水在甁』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시리즈는 한 인물의 생애를 가장 핵심적인 특징을 중심으로 소묘하는 매우 작고 가벼운 평전으로 중국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그 가운데 이 책 『馮友蘭: 云在靑天水在甁』은 펑유란의 막내딸이자 작가인 펑종푸 선생이 저자이기 때문에 더욱 큰 관심으로 다가온다. 제3자가 아닌 가족의 눈에 비친 대학자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펑 선생이 거처하던 삼송당三松堂의 내밀한 풍경이 펼쳐져 있으리라. 한국어판 제목을 『나의 아버지 펑유란』이라고 붙인 이유이다.

문사철과 지근거리에 있는 독자들은 ‘풍우란馮友蘭’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요즘은 외국어표기법에 따라 펑유란이라고 써야하지만 그럴 때마다 풍우란에 익숙한 독자들은 아우라가 뭉텅 떨어져나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전문가들은 ‘펑요우란’이 정확한 표기라고 말함으로써 더욱 심란하게 한다. 아무튼 펑유란은 1894년에 태어나 1990년에 죽을 때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철학자였고, 죽은 지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그가 1934년에 펴낸 『중국철학사中國哲學史』(전2권)는 중국에서 쓰여진 최초의 철학사이며 펑유란의 삶은 제대로 된 중국철학사를 저술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비교적 젊을 때 쓴 『중국철학사中國哲學史』(전2권)에 이어 펑유란은 1948년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중국철학사를 강의한 강의록을 그 이듬해에 맥밀란출판사에서 묶어낸 A Short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1949)를 선보였다. 이 책은 장년의 나이에 이른 철학자 펑유란의 원숙한 사유가 녹아 있어서 국내에서는 이 책이 동양철학사 입문의 필독서로 꼽힌다. 이 책은 한국어판 번역이 1977년 『중국철학사』(형설출판사)란 이름으로 나왔고, 그보다 늦게 대륙에서 『중국철학간사中國哲學簡史』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펑유란은 85세의 고령에 집필에 착수해 죽기 직전 또 한권의 중국철학사를 완성하는데, 이것이 위독한 상태에서 병상에 누워 구술로 마무리지었다는 전7권 150만자에 이르는 『중국철학사신편中國哲學史新編』이다. 세상을 등지기 몇 년 전부터 앰뷸런스에 실려서 병원과 집을 오갔던 아흔이 넘은 노학자는 이 책의 마침표를 찍은 지 불과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의 저자 펑종푸는 누구이며, 왜 책을 쓰게 되었는가



학문적인 생애도 드라마틱하지만 1894년에 태어난 펑유란은 청나라(1636∼1912) 말기에 청년기를 보냈고, 장제스의 국민정부(1925~1949)에서 장년기를,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시기를 노년에 겪었으며, 말년에 이르러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 시기도 목도한 중국현대사의 산증인이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해외로 망명할 때도 그는 “철학은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해야 한다”며 중국을 떠나지 않았다. 홍위병들에게 둘러싸여 자기비판을 했고 자신의 학설을 부정했다. 그러고도 부르주아를 위한 철학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펑유란의 학문은 바로 이러한 길고도 고된 생의 여로에서 황주黃酒처럼 익어간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책에서 아버지의 삶을 담담하게 회상한 펑종푸馮宗璞는 펑유란의 막내딸이다. 막내딸이긴 하지만 이미 팔십 노인인 그녀는 중국문단의 원로 중의 원로이다. 1928년에 태어나 가학의 영향으로 글쓰기의 업을 택해 소설가로 명성을 떨쳤다. 1996년에는 문집이 묶여 나올 정도로 지명도가 있는 작가이다. 1990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이미 예순이 넘었으며, 2002년 이 책을 펴낼 때는 일흔 중반의 노인이었다. 즉, 이 책은 평생을 아버지와 함께 동거동락하며 1960~70년대의 엄혹한 시기도 견뎌낸 딸 종푸가 예순이 넘어 아버지를 잃고 그 상실감을 추슬러 칠십이 넘어 저술한 ‘나의 아버지 펑유란’이다.

이 책의 시작은 감동적이다. 2000년 저자는 안질에 걸려 수술대에 3번이나 올랐다. 실명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작가에게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엄청난 불안이자 고통일 것이다. 그 때 그의 앞에 아버지 펑유란이 나타나서 말한다.



“무서워 말거라. 나는 살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끝냈다. 너도 그럴 수 있을 게야.”



실명의 공포를 이기게 해준 한마디였다. 사실 그녀의 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다. 저자는 이렇게 돌아가신 아버지와 자신의 삶을 잇대면서 회고를 하기 시작한다. “정말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러려면 아버지가 어떻게 하셨는지 떠올려야 했다. 나는 기억 저편 깊숙한 곳에서 아버지를 찾기 시작했다”라면서 말이다.

제1장에서 저자는 아버지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만년은 고달팠지만 동시에 찬란했다. 정치적 소용돌이의 늪에서 벗어날 때까지 전신에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을 만큼 핍박을 당했지만 다행히 목숨만은 건지셨다. 아버지는 상당히 자유로운 사상을 펼쳐나가셨다.” “아버지 세대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중국의 사회변혁 시기에 신문화를 창조한 세대였다. 어느 학과,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뜨거운 조국애, 자신의 조국이 눈을 부릅뜨고 세계 모든 민족 가운데 우뚝 서기를 열망하는 뜨거운 마음이었다.” 즉, 펑유란 세대는 뜨거운 조국애로 철학의 길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는 펑유란이 임종 전에 완성한 책의 서문에서 인용한 장재張載의 “세상을 위해 마음을 정하고, 백성을 위해 사명을 다한다. 앞서간 성현들을 위해 끊어진 학문을 잇고, 만세를 위해 태평성세를 연다[爲天地立心, 爲生民立命, 爲往聖繼絶學, 爲萬世開太平]”에서 살펴진다. 그러나 눈도 보이지 않은 팔십객의 아버지가 생의 마지막 10년을 송두리째 이 작업과 바꾸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는 딸로서는 마음이 괴로웠을 것이다. 저자가 아버지에게 이런 심정을 털어놓을 때마다 펑유란은 말했다. “확실히 힘이 들긴 하구나. 하지만 결코 싫지는 않단다. 멈추려 해도 멈출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이런 것을 두고 ‘봄누에는 죽을 때까지 실을 뽑고, 촛불은 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촛농이 마른다[春蠶到死絲方盡, ?炬成灰淚始乾]’고 하는 거겠지.” 하루는 갑자기 심장 발작이 났다. 급히 응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펑유란은 병상에서 힘겹게 말씀을 이어가며 저자에게 당부했다. “얘야. 이번에 나를 꼭 살려내다오. 아직 책을 마치지 못했어. 책이 완성되면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지금은 아니야.”





펑유란에게서, 어떤, 삶의 향기를 맡다



펑유란은 “무슨 일이든 온 마음을 다하라”고 자식들에게 당부하곤 했다. “헛된 명성에 기대어 들뜨지 않으면 고요함 속에서 더욱 아름다운 음악이 들린다”면서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아버지가 살면서 즐겨 암송했던 시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내가 도道를 물으니 다른 말은 없고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에 있다 하네”와 같은 시들이다.

펑유란은 딸에게 말했다. “장수하니 진실을 더 많이 알 수 있어서 좋아. 특히 철학의 진리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어”(본문 45쪽) 이와 연관하여 저자는 “아버지의 장수 비결”에 대해서도 털어놓는다.



“아버지가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매일같이 중국 전통문화의 진수를 흡수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에 대한 유가의 지혜와 실천력, ‘기수沂水에 가서 목욕하고 무우舞雩 언덕에 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시를 지어 읊다가 돌아오겠습니다’와 같은 증점의 생각, 어디서든지 노닐 수 있는 장자의 사상, ‘내가 도를 물으니 다른 말은 없고,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에 있다고 하네’의 선종禪宗의 경지이다.” (본문 49~50쪽)



“사람은 나이가 들면 보통 자신이 쓴 글도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다. 눈빛에 총기가 사라지고 불안에 떠는 경우도 많지만 아버지는 시력과 청력을 거의 잃고도 한결같으셨다. 일이 없으면 시문詩文을 암송하셨는데, 특히 한원두韓文杜(1896~1945)의 시를 좋아하여 아침에 일어나 나직이 외시기도 했다. 가끔 생각이 나지 않는 구절이 있으면 내게 찾아 달라고 부탁하셨다. 아버지의 머릿속은 자료실과 다를 바 없어서 학문을 탐구할 때도 메모나 기록에 의존하는 일이 거의 없으셨다.” (본문 54쪽)



제3장에 가면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보낸 유년시절을 더듬는다. “1938년 봄, 베이징대, 칭화대, 난카이南開대는 잠시 머물던 헝산衡山 샹수湘水에서 쿤밍으로 옮기고 시난연합대를 세웠다. 쿤밍에 학교 건물이 부족해서, 4~8개월 동안 문과대학과 법과대학은 멍쯔에 있었다.”(본문 64쪽) 이 시절은 평화로웠다. 남쪽 호수는 물도 많았다. 기슭에는 버들가지가 드리워지고 물 위에는 연꽃이 피어 참으로 아름다웠다. 가끔 펑 부부는 자식들을 데리고 호숫가를 산책했다. 이때 펑유란은 43세로 검은 수염을 반쯤 기르고 장삼을 휘날리며 다녔다. 펑유란 1938년에 후난湖南성에서 윈난으로 가다가 남쪽 관문에서 팔이 부러져서 이후로 수염을 기르게 되었다. 저자는 “아버지가 수염이 빨리 자라는 것을 자랑하시던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펑유란이 팔이 부러진 이유는 버스에서 팔을 내놓고 사색에 잠겼다가 버스기사의 충고를 듣지 못해서이다.

이 책은 이어서 펑유란이 미국으로 건너가 유수의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이야기, 문화대혁명을 힘겹게 통과한 이야기, 아버지 펑유란이 실천한 ‘아둔함의 시대정신’에 대한 고찰, 말년의 급박했던 저술에 얽힌 추가적인 에피소드, 펑유란이 죽고 난 다음에 빈집에 도찰하는 편지 이야기로 이어진다. 우리는 펑유란의 95년의 생애가 이토록 짧고 압축적이면서도 글 자체의 여백과 여운이 풍부한 글을 쉽게 만나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딸로서의, 작가로서의 장점이 십분 발휘되어 있다. 아직 국내에는 펑유란의 자서전인 『삼송당자서』조차 출간되지 않았다. 그런 중에 이 책은 펑유란이라는 세기의 거인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창 역할을 해줄 것이다.





정인재, 황희경 두 학자의 이야기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펑유란의 철학을 국내에 소개한 두 사람이 펼쳐내는 사연들이다. 정인재 교수의 「나와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는 한국 동양철학 1.5세대의 자서전이라는 느낌이 들 만큼 진솔하고 자세하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해서 동양철학을 배운 이야기, 펑유란을 만나고,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하여 영어로 된 A Short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1949)를 먼저 번역하게 된 이야기, 대만 유학시절 번역을 완성해 대학노트 28권을 가득 채운 사연 등은 흥미진진하다. 펑유란 선생이 이를 기억했다가 한국 학자가 방문하면 “정인재를 아느냐”고 꼭 물어보았다는 에피소드도 훈훈하기 그지없다.

황희경 교수가 펑유란의 삶과 사상을 소개한 「매우 오래된 것의 새로움」은 서정적, 철학적 사색의 향취가 가득하다. 앞쪽은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이고, 뒤쪽은 펑유란의 철학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다. 앞쪽 한 부분을 아래에 인용한다.



종푸宗璞 여사가 그의 아버지 펑유란을 회고한 이 짧은 책을 읽고 잔잔하지만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는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를 읽고 중국철학의 세계에 입문하였지만 그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말에 그의 자서전인 『삼송당자서三松堂自序』를 당시 대학로에 있던 중국 서점에서 우연히 구해 읽은 것을 계기로 그의 삶과 사상에 흥미를 느꼈다가 이런저런 인연으로 급기야 그의 철학사상을 주제로 뒤늦게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논문을 준비하는 와중에 1992년 중국에 갈 기회를 얻어 베이징에서 1년 간 체류할 수 있었다. 베이징 대학 구내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들어가 본 삼송당에서 종푸 여사를 잠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녀가 건넨 명함에 아무런 직함도 없이 종푸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던 것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 자신도 유명한 작가다.

이 책에서 나를 감동시키는 한편 부끄럽게 만든 한 구절은 펑유란이 딸에게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완수했다”라고 한 말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도 잠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겨보았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또 뭔가? 그냥 바람에 날리는 휴지 조각처럼 정신없이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또 하나는 펑유란이 좋아했다는 당나라 이고의 시다.



조용히 머물 곳을 골라 초야草野의 정을 즐기니

한 해가 다하도록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다네

어느 땐 외로운 봉우리에 바로 올라

달 아래 구름을 두르고 크게 한 번 웃네



이 책을 읽고 나도 당장 이 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도 책을 덮고 근처 산에 올라 크게 한번 웃고 싶어지기도 했다.

펑유란은 중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헤치며 그 온갖 환란을 어떻게 극복하였을까? 노년에 실명된 상태에서 한순간 한순간 차오르는 죽음을 참아내며[忍死須臾] 자신이 짊어진 역사적 사명을 어떻게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이 책에서 종푸 여사가 잘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유가儒家의 “안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知其不可而爲之]” 집착의 정신과 앞서 언급한 시와 “구름은 푸른 하늘에 물은 물병에 있다네[雲在靑天水在甁]”라는 시에서 표현된 불가 혹은 도가의 초탈의 정신의 조화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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