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고전번역, 문화번역

고전, 고전번역, 문화번역

  • 자 :부산대학교 인문한국 고전번역
  • 출판사 :미다스북스
  • 출판년 :2011-03-25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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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ㆍ점필재연구소 인문한국(HK) [고전번역+비교문화학 연구단]이 발행하는 총서의 제2권이다. 연구단은 2007년 ‘고전번역학과 비교문화학을 통한 소통인문학의 창출’이라는 아젠다를 설정하고 출발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해왔다. 이 책은 지난 2년간 연구단이 수행해온 1단계 연구의 결실 가운데 잘 익은 것들을 주제별로 묶어놓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근대의 민족적 경계들을 해체하는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근대 민족국가 중심의 일국적 시각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문화와 문화 사이[間]를 횡단하는 비교문화적이고 탈근대적인 시각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하지만 비교문화적 시각이 단순히 문화 간 비교에 그치거나, 문화의 차이만 강조하는 문화상대주의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가치한 일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단은 인간의 삶과 정신의 집적체인 고전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창조해갈 미래를 통시적으로 성찰하는 한편, 인간이 능동적으로 창조해낸 여러 문화 사이에 놓인 경계를 횡단하며 상호간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제1의 과제 - 탈중심의 문화론을 위해

총서 1 <유럽중심주의 비판과 주변의 재인식>과 총서 2 <고전, 고전번역, 문화번역>의 필자인 부산대학교 산학연구단이 ‘소통인문학’의 창출을 연구의 종착지로 상정한 이유는 크게 한 가지다. 인간정신의 시간적ㆍ공간적 단절을 넘어선 소통과 이해, 그리고 창신(創新)을 꾀하는 새로운 인문학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연구단은 구체적 삶에 근거한 인문정신의 보편적 원리를 되짚어보고, 길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 앞에서 길을 더듬어가게 해줄 고전연구 및 고전번역에 주목했다. 연구단의 목표는 비교문화학을 고전번역학을 통해 구체화하고, 고전번역학을 비교문화학의 시각을 통해 보편화하는 작업을 통해 급변하는 시대에 인문학적 대안을 제안하는 데 있다. 연구단은 이 아젠다를 추진해나가는 1단계로서 ‘경계의 문화지형학’을 제안하고 간(間)문화적 역학관계와 고전의 형성과정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그 내용으로 설정했다. 고전 연구의 영역은 문화 간 역학관계와 헤게모니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연구단은 지난 2년간 기존 고전번역학의 형성과 그것이 근거하는 문화 간 역학관계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가운데, 특히 주변/중심의 관계 형성과 고전이 주로 중심의 논리로 작용해온 것을 해명하고자 했다.



제2의 과제 - 번역과 고전을 통해 어떻게 문명적 해석과 소통을 꾀할 것인가

이러한 연구단의 노력이 담긴 이번 총서는 다음과 같이 큰 주제별로 2권으로 기획되었다. 우선 제1권은 ‘유럽중심주의 비판과 주변부의 재인식’이라는 큰 주제 하에 1부를 유럽중심주의 비판에 두고 2부를 주변의 대응과 주변의 재인식, 그리고 3부를 동서양의 비판적 조우라는 작은 주제들로 세분하였다.

총서의 제2권은 ‘고전, 고전 번역 그리고 문화의 번역’이라는 큰 주제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여기서 1권은 문화적 우월성을 통해 세계를 지배해왔으며 그 지배를 정당화해온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고 탈식민주의적인 대안 계발과 주변의 가능성을 규명하는 데에 참조가 될 만한 문화이론들을 계발해보자는 데에 그 의도가 있다. 더불어 주변이 서구와 어떻게 대면하였는가 하는 대응의 양상, 그리고 주변과 주변부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인식, 나아가 동서양 비교연구의 양상을 살피고자 했다.



제3의 과제 - 내외적인 문명의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

다른 나라나 문명권의 텍스트는 자국 언어나 문명권의 텍스트든 그 텍스트를 옮기는 일을 통해 우리는 이곳과 저곳, 이 시간과 저 시간을 넘나들 수 있다. 그 작업이 언어학적이든 문화학적이든,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문명 전체의 소통을 일구어낸다. 총서 두 권에 실린 글들은 그 수준이나 각도, 주제에 상관없이 문명의 소통을 위해서 고전과 번역에 대한 사유와 실험적 사고의 흔적을 담은 것이다. 아직 덜 여문 것들이 있을지라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기에 좀더 진보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ㆍ기획의도



총서2 고전 번역과 주변부 고전의 발굴은 우선 ①고전의 기본 개념과 성격을 규명하고, 고전 해석과 ②고전 번역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살펴본 다음, ③기존 고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유럽중심적 시각과 근대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기존의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상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④총서2 1부-고전의 정의와 고전 해석

고전(정전)은 과거의 화석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의 지평이 만나는 장소다. 여기서는 고전(정전)의 개념과 성격, 고전 해석의 방법, 나아가 고전 연구의 필요성과 고전의 현재적 의의를 살펴본다.



⑤총서2 2부-고전 번역과 문화 번역

번역은 단순히 하나의 언어로 된 의미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만을 일컫지는 않는다. 그것은 문자의 축자적 해석을 통해 의미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주어진 현실과의 접면을 형성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확보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나아가 하나의 문헌 속에 들어있는 해당 사회가 부딪친 문제적 상황과 해결방안이라는 관념의 체계까지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일국적(혹은 일민족적) 차원의 경계를 넘어서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특정 문화의 새로운 전환은 언제나 외부와 내부 사이의 충돌, 접속, 생성을 통하여 이루어져 왔고, 이것은 당연히 문명권, 혹은 문화권 사이의 만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한편, 고전번역은 단순히 과거의 문자를 지금의 단어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를 또 다른 문화로 옮기는 문화적 행위인 것이다. 즉 고전 번역이란 고전을 산출한 과거의 지적 공간을 오늘날의 지적 공간 속에 삽입하여 새로운 문맥적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고전 번역은 현재적 기획이며, 고전에 새로운 생명을 획득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고전은 새로운 지위를 회복하기도 하고, 어떤 고전은 기득권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고전번역은 번역이 갖는 시간의 횡단적 성격에, 고전이라는 보편적인 관념이 결합하여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 내 다양한 흐름들의 조우와 융합이 만들어내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고전 번역이 갖고 있는 이러한 양상들을 살펴본다.



⑥총서2 3부-고전(정전)의 정치?사회적 역학관계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서구중심주의의 영향 아래 형성된 고전(정전)에 대한 비판 역시 주력할 필요가 있다. 순수한 고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고전은 문화 간 역학관계와 헤게모니 투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동안 고전은 유럽 패권의 지배하에 유럽중심적 시각에 의해 형성되어왔다. 즉 고전 형성의 과정 속에도 중심/주변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이는 고전의 정치학이 현실 문화 정치학의 지배논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고전은 유럽중심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근대 민족주의에 결박되어 있다. 즉 국민국가에 근거한 근대적 표상체계에 의해 전유되면서, 고전은 근대 민족적 시각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근대적 정전화의 과정은 고전을 자신들만의 유산으로 전유하기 위해 고전의 본모습을 왜곡하는 과정이었고, 그에 따라 각국은 자기 동질적인 문화를 구축해 나갔다. 이렇게 유럽중심주의와 근대적 표상구조에 갇힌 고전의 역학관계와 정치적인 논리를 비판적으로 탐색할 필요가 있다.



ㆍ특성



1부

1. 이연숙,「고전의 ‘국민화’: ‘고전’은 어떻게 국민어와 국민문화 속에서 창출되었는가?」

「고전의 ‘국민화’」는 고전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며, 자명한 것으로 보이는 고전 역시 특정한 역사적 범위 내에서의 자명할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서 고전의 어원과 영문학의 사례를 통해 고전이 제도화될 때에는 반드시 계층분할적인 움직임이 동반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고전의 제도화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일어나는 감미롭고 비밀스러운 경험을 산산조각내고 만다는 점 역시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본다.

이에 맞서 이 논문은 고전 개념의 상대화를 주장한다. 그때, 고전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사회적 위계질서를 효과적으로 비판하고, 독자들이 텍스트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조촐한 경험을 간직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이 글은 고전 개념을 ‘현재 탄생하고 있는 작품들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전유하자고 말한다. 그때 고전은 지금까지 길들여진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기 자신의 사상이나 감성을 충실하게 표현하고,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이 글은 고전 개념에 싱싱한 생명력을 불어 넣으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글이다.



2. 김정현,「철학적 해석학의 관점에서 본 고전과 고전해석」

이 글은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의 관점에서 고전의 개념과 성격을 탐구한다. 가다머의 해석학에서, 고전은 ‘역사적 존재’, 혹은 ‘역사적 실재’의 탁월한 사례로서 언급, 분석된다. 역사적 실재의 특징은, 그것의 이해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의 항시적 매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개의 한 축인 현재는 또한 미래의 기획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고전을 이해하는 과정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철학적 해석학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것을 고전이라 부를 때, 거기에는 ‘모든 시간의 변화를 넘어 지속하는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 있다. 다시 말해 “지속하는 어떤 것, 상실될 수 없고 모든 시간적 상황에 독립적인 어떤 것에 대한, 모든 현재에 대해 동시성을 의미하는 일종의 무시간적 현재에 대한 의식이 거기 있다.” 여기서 무시간성은 고전이 역사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의 지표가 아니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한 양상”이 무시간성이라는 것이 가다머의 생각이다.

이러한 역사적 의식으로서(als) 우리가 고전을 대면할 때, 언급했듯이, 미래의 기획 역시 작용한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려고 하는지에 따라 고전에서 부각되는 바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고전에서 무엇을 대면할 지는 우리가 어떤 미래를 기획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3. 주광순,「고전의 더 나은 이해를 위하여 - 플라톤의 햐르미데스에 나오는「인식의 인식」의 예」

어떤 것이 좋은 해석일까? 고전을 해석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질문을 할 것이다. 그런데 두 종류의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저자의 고유한 의도에 정확히 도달하려는 해석과 해석자와 저자의 대화를 하려는 해석. 전자는 베티가 취하는 입장이고 후자는 가다머가 취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겠다. 가다머는 베티의 객관적 의미 추구를 넘어서고자 한다. 그래서 해석자가 가진 선입견을 이용하여 자신의 지평에 서서 저자와 대화하고자 한다. 이 두 종류의 해석 방법을 비교하기 위해서 텍스트로는 플라톤의 『햐르미데스』의 ‘인식의 인식’이 등장하는 부분을 들고 해석자는 Tuckey, Oehler와 가다머를 잡았다.

Tuckey는 초기 대화편과 역사적 소크라테스에 충실해서 플라톤의 고유의 의도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인식의 인식은 역사적 소크라테스의 ‘논박’과 연결된 문제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사태에 대해서는 좀 더 철학적으로 반성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그에 반해서 Oehler는 이미 풀고자 하는 문제가 있다. 주관성의 과도화이다. 그래서 인식의 인식을 “사태와 결부되지 않았고, 자율적이고 무제한적으로 세계를 자신으로부터 해석하는 의식”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는 플라톤이 의식의 의식을 길게 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을 의심한 것은 이러한 과도한 자기의식을 반대하기 위해서였다고 본다. 또한 가다머는 인식의 인식에서 자기관련성의 문제를 먼저 다룬다. 더 큼이나 많음 같은 것은 이것이 불가능하나 시각이나 청각 그리고 운동과 열기는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양적 관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영혼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들은 영혼의 자기 운동성의 놀라운 결과물들이다.

두 가지 해석학적 입장 중에서 양자택일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가능한 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되 텍스트가 다루는 사태에 대해서 해석자 자신도 끼어드는 방법은 어떤가 생각해 본다. 다만 자기가 이렇게 하고 있다는 점을 철저히 의식하고서 해야 할 것이다.



4. 김종인,「경전에서 고전으로: 불교 문헌의 현대와의 대화」

경전과 고전은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그러나 양자가 가진 권위의 본질과 표현 방식은 매우 다르다. 경전은 자신이 시공을 초월하는 절대적 진리임을 스스로 선언한다. 경전의 권위는 국가와 같은 사회제도에 의해 강화된다. 경전은 전통사회에서 구성원의 의식을 지배한다. 그러나 고전은 현대 사회의 산물이며 자신이 절대 진리임을 주장하지 않는다. 고전은 진리의 담지체가 아니라 문화적 가치이며시공굄 가치는 독자 대중에 의해 인지되어야 한다. 고전은 보편성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역사적이고 상대적인 보편성이다.

현대사회의 도래 이전에 불교의 전통 문헌들은 경전으로 인식되었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0세기에 한국 사회가 여러 면에서 현대화되자, 사람들은 불교문헌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어떤 불교문헌들은 대중들 가운데서 절대진리로서의 경전이 아니라 고전으로 인식되었다. 고전으로 일컬어진 이들 대부분은 한국 승려들의 저술들이다. 이것은 근대국가에 보편적인 문화민족주의와 관련이 있다. 근대국가들은 문화적 정체성을 필요로 했으며, 그러한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고전을 구했다. 한국불교의 저술들은 한국문화의 정체성에 부응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2부

5. 이동철,「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

근대어의 형성은 최근 동아시아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현재의 연구는 개별 용어나 개념이 번역되고 전파된 양상에 집중되어 있는데, 본 논의에서는 이 주제를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관련하여 살피고, 아울러 동아시아 문명이 형성되고 전개되는 과정에서 번역이 수행한 역할을 논하고자 하였다.

논자는 먼저 네 가지 측면으로 동아시아 문명의 복합적 성격을 살펴보았다. 첫째, 문명의 단위로서 중국 문명과 타문명의 관계이다. 둘째, 문명의 기체(基體)로서 유교, 도교, 불교, 회교, 기독교라는 오교(五敎)의 공존이다. 셋째, 언어의 성격으로서 아어(雅語)와 속(俗語)의 대립이다. 넷째, 문자의 체계에서 보이는 한자(漢字)와 국자(國字)의 병용이다.

이어서 본 논의는 동아시아 세계의 공동 문어인 한문이 지니는 특성을 검토하였다. 한문은 그 기본 단위인 한자가 형태, 발음, 의미로 구성되었기에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문의 기본이 되는 중국어는 상고한어(上古漢語), 중고한어(中古漢語), 근대한어(近代漢語), 현대한어(現代漢語)라는 역사적 변화를 겪은 것이다. 이 변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은 불교와 서구 문명의 전래이다. 중고한어는 불교의 전래와 번역으로 형성되었고, 현대한어는 서구 문명의 수용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불교의 전래는 철학, 종교, 사상, 문학,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동아시아 문명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교의 전래와 번역에 의해 진행된 언어의 변화이다. 그 변화는 음운의 측면, 어법의 측면도 있지만 어휘의 변화가 특히 중요하다. 나아가 번역과 국어에 대한 자각을 가져온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요인은 서구 문명의 도래와 번역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서구 문명을 번역하여 근대화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일본이 성공할 있었던 주요한 원인은 불교, 신유학, 병학(兵學), 국학(國學) 등 동아시아의 지적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문명은 번역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현재도 지니고 있다. 동아시아의 성공적인 근대화는 공동 문어로서 한문의 번역어적 성격, 그리고 번역어의 전파와 공유가 중요하게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문의 교육, 고전의 번역을 통해 전통적인 지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의의있는 일이다.



6. 김정현,「언어번역에서 문화번역으로」

이 논문은 번역에 담긴 상호문화성을 성찰하기 위해 폴 리쾨르의 번역론을 분석한다. 번역은 상호문화성을 성찰하기에 적절한데, 그것은 자국어와 모국어 사이를 쉼 없이 왕래하는 번역의 성격이 자문화와 타문화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성찰하기 위한 여러 자원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리쾨르의 언어적 차원에서 먼저 번역을 분석한 , 문화적 차원에 적용한다. 언어적 차원에서 번역을 분석하면서, 그는 번역이 서로 다른 언어 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동일 언어 내에서도 번역이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기서 번역론은 해석학과 만난다.

번역은 모국어와 외국어의 차이를 인정하고, 둘 사이를 “끝없이 왕래하는 것”이다. 이 끝없는 왕래는 차이를 무한히 인정하겠다는 것, 그럼에도 (추정된) 공통성의 추구를 멈추지 않겠다는 번역의 정신을 표현한다. 문화 간 조우에서도 첫째가는 덕목은 타 문화의 타자성을 존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존중이 새로운 공통성의 창출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문화 상대주의로 귀결될 것이다. 문화 상대주의는 진정한 문화 간 교류를 방해하여, 폐쇄적 문화만을 남긴다.

번역은 비교 불가능한 것들 사이를 오가는 과정에서 비교 가능한 것을 생산한다. 이 생산이 없다면, 번역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비교 가능한 것은 번역 이전에 존재하던 것들의 평면적 교집합이 아니라, 새롭게 형성된 공통적인 것이다. 이것은 ‘구체적 보편자’로 명명될 수 있다. 문화적 차원에서 이 ‘구체적 보편자’는 문화 간 교류가 구체적 역사, 구체적 삶의 특수성에 매몰되지 않고, 보편성을 추구하되, 그 추구가 구체적인 것에 기초하여야 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번역은 구체성,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보편성, 통일성의 추구를 멈추지 않는다. 번역의 이러한 특성은 오늘날 지역화와 지구화와 동시에 진행되고 상황에서 문화 간 관계를 사유하고, 실천하기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번역 연구에서 획득되거나 부각, 혹은 환기된 개념들인 ‘언어적 환대’, ‘구체적 보편자’, ‘서사적 정체성’ 등은 우리가 상호문화성을 사유하는 데 소중한 통찰과 자원들을 제공한다.



7. 김종인,「20세기 초 한국 불교 개혁론에서 불경의 한글 번역에 대한 인식」

19세기에 한국 불교는 기독교를 비롯한 서구 문명의 유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맞았다. 의미심장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언어환경의 변화였다. 중국문명과 한문을 사용하던 양반 계급의 몰락으로 한문의 중요성이 현저히 감소하였다. 또한 하문은 새로운 문화적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장애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글은 한문에 대한 매우 적합한 대체물로 인식되었다. 한글의 사용이 전통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 가운데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한글 전용 정책을 통해서 포교에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한국불교도들로 하여금 불교의 개혁을 논의하게 만들었다. 권상로의 <조선불교개혁론>,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 이영재의 <조선불교혁신론>은 당시의 대표적인 불교개혁론들이다. 이들 저술들은 교육과 포교를 개혁의 주요 과제로 설정했는데, 이것들은 다른 개혁 과제들의 기초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조선불교개혁론>에는 저자가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흔적이 없으며, <<조선불교유신론>>은 번역에 대해 단 한 문장으로만 언급하고 있다. <조선불교혁신론>에서는 번역이 주요한 과제로 등장했지만, 당시에 번역이 활발히 행해지지는 않았다. 백용성은 불교 문헌의 번역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지만 호응을 얻지를 못했다. 당시 한국 불교인들은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다.



8. 김남이?하상복,「최남선의 신대한(新大韓) 기획과 ‘로빈슨 크루소’」

六堂 崔南善(1890;고종27∼1957)은 1900년대 초반부터 조선 신문명론의 선두에서 '新大韓'을 기획했다. 이를 위해 그는 조선광문회와 신문관 등의 출판 활동을 통해 동서양의 고전/텍스트를 수집, 소개, 번역하면서 조선문명화라는 절실한 명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조선문명화의 꿈을 이루어갈 신대한의 미래로서 ‘소년’을 발견하고,『少年』(1908~1911),『靑春』(1914~1915) 등의 잡지를 통해, 조선의 소년에게 필요한 문명의 지적 체계를 확산시키고자 했다. 이때 동서양의 고전/텍스트들은 소년의 정신과 육체를 성장, 문명화하는 機關이자 자양분으로서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이 글은 그렇듯 최남선이 민족-국가의 상실 위기 속에서 ‘소년’을 통해 문명조선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려 했는가 하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신문명의 외양을 하고 나타난 ‘서양’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당대 조선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유용한 가치로 소화해낼 것인가 하는 최남선의 질문과 실천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1910년대까지 그의 활동은 조선 전통의 고전텍스트와, 그가 입수했던 새로운 동서양의 텍스트들을 번역, 출판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질문과 실천 또한 이러한 그의 활동 맥락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조선문명화의 운명을 걸머진 ‘소년’의 像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텍스트들이 있는데 이 글은 그 중 최남선이 영국 작가 다니엘 디포우(Daniel Defoe)의『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1719)를 번역하여『소년』에 연재한『로빈슨無人絶島漂流記』(1909)를 주요 텍스트로 다루었다. 최남선이 ‘활동, 진취, 발명의 대국민을 양성하’고자『소년』을 창간하던 그 시초에 ‘로빈슨 크루소’는 ‘소년’과 동시적으로 등장했다. 이런 점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20세기 초 최남선의 신대한 기획에서 매우 중요한 기표가 된다.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을 상기하며, 원작『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1719)에서 형상화된 ‘로빈슨 크루소’ 혹은 ‘그의 遊歷’이 최남선의 ‘문명’과 ‘소년’이라는 조선의 컨텍스트에 삽입되었는가, 어떻게 ‘번역’되었가를 살펴 본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논의가 논리적이고 엄밀하게 이루어지려면 원작『로빈슨 크루소』가 출판 당대 및 19세기,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미 문학에서 어떤 텍스트로 읽혀지고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영미 문학 및 비교문화 전공자와 공동 연구로 진행된 결과 나온 것이다. 최남선과 그가 꿈꾸었던 ‘소년’ ‘조선’의 像, 그리고 이런 꿈과 동시에 등장했던-번역되었던- ‘로빈슨 크루소’를 통해 근대 시기 ‘서양’이라는 새로운 문명이 어떤 텍스트에서 어떤 방식으로 조선의 현실적 요청 속에서 ‘번역’되었는가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3부

9. 강명관,「『서포만필』의 민족어문학론 비판」

김만중의『서포만필』에는 한국어 시가의 가치가 한시보다 높다고 하는 비평문이 실려 있다. 이 비평문은 이른바 ‘민족어 문학론’의 기원으로 규정되었다. 즉 한국문학사에서 한문학의 위축과 소멸, 한국어 문학의 성장과 주류화를 예고하는 최초의 비평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만중의 비평은 국문시가의 가치를 긍정한 것이지, 그것이 곧 한문으로 문학 창작을 하지 않고, 한국어로 문학을 창작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김만중의 비평을 이어 국문시가의 가치를 긍정한 이정섭과 홍대용 등의 비평가들 역시 한문으로 문학 창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즉 김만중과 이정섭, 홍대용은 모두 국문시가와 한문학의 공존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만중의 비평을 민족어 문학론으로 규정하는 것은 조선시대를 전기와 후기를 가르고, 전기에 한문학, 후기에 한국어문학을 배치하고, 전기에서 후기로의 변화를 근대적 문학으로 파악하려 한 민족주의와 근대주의의 해석일 뿐이다.



10. 김남이, ‘연암(燕巖)’이라는 고전의 형성과 그 기원

이 논문은 근대에 연암(燕巖) 박지원이 현대의 우리가 아는 실학자이자 소설가로 불려 나와 ‘연암’으로 조소(彫塑)되는 지점을 살피기 위한 시론으로서, ‘연암’이라는 텍스트를 둘러 싼 시선의 전사(前史)에 관한 탐구이다. 19세기말 20세기초의 지식인들이 중세적 사유의 한도 내에서 ‘연암’을 새롭게 설정하고, 또 그에 기반하여 연암에 관한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하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이러한 방향성은 일제 강점 하에서, 조선을 새롭게 설정해 하고자 했던 국학자들의 운동 속에서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11. 김소정,「근대중국의 ‘新文學’ 형성과 정전화 과정」

본고는 청말무렵 'literature'의 번역어로서의 ‘文學’이라는 용어가 선택되는 과정에는 유사개념을 지닌 용어와의 경쟁, 그리고 주인언어의 문화가 개입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내재되어 있음을 밝혔다. 이후 민국(民國)시기로 접어들면서 ‘文學’은 1915년 신문화운동을 기점으로 전통을 청산하고 미래 문학의 모델과 발전 방향을 확립하는 시대적 고민 아래 ‘新’형식과 ‘新’사상을 지닌 ‘新文學’으로 재탄생한다. ‘新文學’은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중화문명의 정체성 형성이라는 민족국가의 목적과 접속되는 지점에서 정전화되어 갔으며, 이는 뜻밖에도『中?新文?大系』의 출간이라는 경제적 이윤을 노린 사업적 기획 덕분에 가능했다.



12. 허정,「윤동주 시의 정전화와 민족주의 지평 넘기」

이 글은 윤동주의 시를 정전 이론의 관점에서 독해하였다. 정전은 특정 사회집단의 이익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지배나 통치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문제점, 텍스트 해석의 균질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윤동주의 시가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저항시로 정전화되는 현상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는 윤동주 시의 가치 못지않게,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한 사회주의의 억압, 반일주의로 인한 윤동주의 희생 부각, 학교교육을 통한 재생산이라는 사회적 영향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항일 저항의 관점 하에서는 윤동주가 후기시에서 보여준 점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민족주의의 지평을 넘어설 때 윤동주의 후기시에서 경계를 넘어선 연대의 자세와 초민족적 공동체에 대한 열망을 읽어낼 수 있다. 이런 측면은 지금의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공유되어야 할 한국문학의 유산에 해당한다. 바로 이러한 점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것이야말로 윤동주의 시를 지금 여기의 문제로 되살리는 방법(현재성)이 될 것이다.



13. 이은령,「언어 자료의 정전화와 아카데미 프랑세즈 사전」

이 연구는 한 사회에서 특정 텍스트가 사회 담화적 작용으로 인해 전범(典範)이 되거나 교육의 대상이 되는 정전화의 양상을 고찰하는 데 그 목표가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우리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사전(Dictionnaire de l'Academie Francaise)을 프랑스의 17-18세기의 언어 정책을 기획한 제도권에 의해 정전화 된 텍스트로 간주한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총 9판에 걸쳐 사전을 출판해 오고 있는데, 프랑스의 왕권 확립 시기와 중세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기반을 닦은 근대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프랑스와 유럽의 사전편찬학계에서 따라야 할 모델로서 그리고 지표로서 간주되어 왔다. 본 연구에서는 아카데미 사전의 수용 문제를 중심으로 비판, 수용, 모방과 그리고 변형으로 나누어 구체적인 예를 통해 아카데미 사전의 정전화 양상을 살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사전은 사전편찬학자들의 비판과 존중을 동시에 받았으며 이는 아카데미 사전의 편찬 전통과 단어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특정 텍스트의 정전화는 텍스트의 소비와 수용에 있어서의 권력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아카데미 사전은 정치적으로 정전화 되었고 사전과 문법학계에서의 수용 양상은 이러한 과정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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