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초상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초상화가 과연 어떤 제작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초상화 제작의 열쇠를 쥐고 있는 밑그림, 즉 초본과 마주서게 된다. 일반적으로 초본은 작품의 틀을 구상하면서 처음 그리는 그림을 의미하는데, 초상화 초본은 초상화을 그리는 단계에서 처음으로 인물을 묘사하는 밑그림을 뜻한다. 이 책의 초점은 바로 이 초본이며, 조선시대 초상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초본의 의미와 제작 기법 및 주요 작품에 대한 분석을 풀어내고 있다. 더불어 정본과 초본, 즉 빛과 그림자 관계라 할 수 있는 두 그림이 합일치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초상화가 하나의 회화작품으로 완성되는 내밀한 면모를 엿보게 한다.
특히 여러 문헌을 종합하여 추정한 초상화 제작의 13단계 재현이나 왕의 초상(어진)을 그리는 치밀한 과정을 언급한 점은 조선시대 회화의 작품세계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초상화 제작의 복잡한 과정, 그리고 채색과 배채
초상화 제작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특히 왕의 초상(어진)을 그릴 때에는 마치 왕을 대하듯 엄격하게 모시고 그림 작업에 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엄정한 평가와 검증 그리고 과학적이고 세부적인 단계를 거칠 만큼 어진 그리기는 매우 중요한 국가 행사였던 셈이다. 더불어 조선시대 최고의 초상화 화가들이 여러 대신들의 초상을 그리면서 수백 년의 회화 문화를 발전시켜 왔음을 알 수 있다. 초상화는 다른 회화 작품과 차이가 나는 것 중 하나가 비치는 종이(유지)에 밑그림을 그린다는 것인데, 그것으로부터 초상화의 비밀을 풀 수 있게 된다. 반투명한 유지에 초본을 그리게 되면 뒷면에 칠한 채색이 쉽게 비추어 보이는데, 앞에서 칠한 전채와 뒤에서 칠한 배채가 합쳐져서 생기는 채색의 효과를 미리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유지초본의 채색 결과를 바탕으로 이후에 이어지는 정본의 채색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게 만든 과학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렇듯 조선시대 초상화는 우리 고유의 독특한 기법을 발전시키면서 많은 작품들을 완성시키며 오늘에 전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정본과 함께 초본이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 작품이 많지는 않다.
대표작품을 통해 본 조선의 초상화!
이 책에서 소개하고 대표적인 작품들은 주로 이름난 대신들의 정본과 초본들이다. 영, 정조 시대에 활약한 인물들의 유지초본 33점으로 구성된 <명현화상>은 모두 문인들의 반신상을 그린 초상첩이다. 그리고 천재화가 임희수가 그린 여러 대신들의 초상첩 <임희수필 초상화 초본첩>은 화가의 자유의지가 돋보이는 수준높은 작품들이다. 또한 정조 때 의 명재상 채제공의 초상화는 초본과 정본이 모두 전하고 있는 작품으로 조선시대 초상화의 단면을 여실히 볼 수 있다. 한편 초상화 분야의 개척기라고 할 수 있는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는 최덕지 초상이 있는데, 이 역시 초본과 정본이 모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조선시대 대표 작품을 통해 이 책은 초본의 의미, 초본과 정본의 관계, 빛과 그림자처럼 두 그림이 어떻게 상호 관계를 갖는지에 대한 합일치 과정, 채색과 배채의 유형, 초상화의 발전 과정 등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