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사'와 '미시사', 어느 쪽이 진정한 리얼리티를 구현하고 있는가
"유럽의 1970년대는 회의주의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경제적 풍요와 무한한 진보를 약속했던 자유주의와 과학기술은 사회적 불평등과 생태적 재난을 가속화시켰다. 비판적 지식인의 대안 중 하나였던 사회주의도 교조화의 길을 감으로써 본래의 방향성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1970년대의 지적 위기가 역사학에 던진 가장 큰 충격은 사회의 규칙적 진보라는 오랜 과정이 무너져 내렸다는 점이다.
l6세기 말 과학 혁명에서 시작 되어 18세기의 계몽사상기에 확고한 기반을 닦은 이러한 믿음은, 이후 서양 문명에는 자신감을 동양 문명에는 열패감을 안겨 준 그야말로 거대 신념 체계였다. 이 체계의 포용력은 막강해서, 자유주의 편향의 기능주의는 물론, 그에 대한 강력만 비판 세력인 맑스주의까지도 그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역사가 규칙적으로(물론 때로는 '이성의 관계'에 의해 우회로를 택하기도 하겠지만) 진보한다는 믿음에 대한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불연속의 역사관이다. 역사란 과연 어떤 '법칙'이나 '필연'에 의해 움직이는 것인가? 아니면 설명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어떤 '우연'과 '불연속'의 층위들을 가지는 것인가? 만일 역사에 본질적으로 불연속의 측면이 존재한다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현재의 모습을 인과적으로 연관되게 설명하려는 노력은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거대 체제와 이론으로는 도저히 포괄하기 어려운 리얼리티의 복잡다단한 단층들이 존재하리라는 것이다.
서설에서는 최근 30년 간 미시사의 전개 양상과 특징을 대표적 저작들을 중심으로 개관하고 있다. 민중 문화의 뿌리 찾기를 시도한 진즈부르그, 근대 초 평범한 농촌 여인의 선택을 보여준 데이비스, 근대 국가와 시장 경제라는 거대 조류에 맞서 그들만의 삶을 꾸려간 농민들의 일상적 생존 전략을 그린 레비, 대담하게도 갈릴레오 재판의 '진실'을 전복하려 한 레돈디 등의 저작을 통해, 미시사의 특징이 잘 경계지원진 소집단의 개개인을 추적하는 '실명적 역사', 실증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합리의 길을 벗어나지는 않는 '가능성의 역사', 사건의 전말을 말로 풀어나가는 듯한 '이야기로서의 역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즘 연구로 서강대에서 석ㆍ박사학위를 받고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하였다.
현재 부산대 사학과에 재직 중이다.
관심분야는 근ㆍ현대 이탈리아 사상사와 사학사이다.
저서로는 <마키아벨리즘과 근대국가의 이념>
역서로는 피터 버크의<역사학과 사회이론>외 다수가 있다.
최근의 글로는 <자유도시의 신화와 도시 이데올로기>, <부르크하르트와 회이징아:미술사의 관점에서 본 르네상스>등이 있다.
엮은이 서문
서설 : 미시사란 무엇인가
제1부 미시사의 이론과 방법
─징후의 실마리로 풀어가는 질적 역사
1장 이름과 시합 : 불평등 교환과 역사책 시장
2장 미시사에 대하여
3장 미시사에 대하여 내가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
4장 징후들 : 실마리 찾기의 뿌리
제2부 '베난단띠, 메노키오,샤먼'
─진즈부르그의 민중문화론에 대한 논쟁
5장 마녀연회 : 민중적 제의인가, 이단 신앙의 전형인가
6장 메노키오에서 삐에로 델라 프란체스까까지:
까를로 진즈부르그의 글들에 대하여
7장 까를로 진즈부르그와 미시사의 도전
제3부 '마르땡, 아르노, 베르뜨랑드'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와 역사적 진실에 대한 논쟁
8장 마르땡 게르 다시 만들기
9장 '절름발이에 대하여'
10장 증거와 가능성 :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 작
《마르땡 게르의 귀향》에 부쳐
글의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