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소설로 만나는 이순신, 산문의 해전(海戰)!
눈에 불을 켠 염결한 산문가 김훈의 찬란한 미학적 전투
언어와 무기 사이의 거리를 채우는 불화살과도 같은 소설
기이한 소설 하나가 출전(出戰)한다.
이것은 세 겹의 갑옷을 입은 소설이다. 우선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시작할 무렵부터 그가 물러가는 적의 전면에 자신의 육신을 내던져 전사하기까지 이순신의 삶과 임진왜란 당대의 사건들이 첫 번째 겹을 이룬다. 『난중일기』,『함경도일기』,『임진장초』, 『이순신의 서간첩』, 그의 사후에 나온 서지 등을 참조로 이순신과 그의 시대가 미시적으로 서술된다. 조선을 침탈한 왜적의 행보와 그에 응전하는 임금(사직)과 정치, 백성, 군대의 각기 다른 대응 방식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의 역사 동학과, 인간이라는 종족의 서글픈 '진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두 번째로 김훈은 우리 역사가 가질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무오류의 영웅인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괘적을 실증적으로 복원하되, 신화로 남은 자의 내면의 전투까지도 형상화하려 애쓴다. 철저한 이순신 자신의 1인칭 서술로 일관된 시점을 통해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무의미와 그것의 폭력성,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무장으로서의 고뇌,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꼼꼼한 전투 준비와 전투 와중의 급박한 상황, 풍경과 무기, 밥과 몸에 대한 사유 들이 채색된다. 그것들이 융합되어 만들어가는 이순신이라는 영웅의 아우라는 순결한 영혼의 노래이자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의 몸을 입은 표현이다.
여기에 겹쳐지는 세 번째 갑옷은 바로 김훈의 미려한 문체이다.
"아름다운 한국어의 밭" 김훈의 문체는 이순신의 이미지와 필사적으로 대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때로는 언어의 날개를 펼친 듯한 학익진(鶴翼陣)의 문체로, 때로는 사건의 핵심을 찌르는 일자진(一字陣)의 문체로 극도로 통제되고 절제된 이순신의 생의 국면을 끌고가는 김훈의 문체는 그 실존적 사유의 밀도는 물론 집중력에 있어서 전범을 찾을 수 없는 경지를 보여준다. 문장의 소실점 이면을 향해 꽂히는 김훈 육성의 화살은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이순신의 생과 더불어 끝을 두렵게 만든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독자들은 이순신과 김훈이 겹치는 아름다운 순간, 비감을 느끼게 되리라.
저자소개
1948년 서울 출생. 오랫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 지은 책으로는 독서 에세이집「내가 읽은 책과 세상」「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문학기행1,2」(공저)「풍경과 상처」「자전거 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칼의 노래」등이 있다.「칼의 노래」로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단편소설「화장(火葬)」으로 2004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에게는 생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생의 긍정을 배면에 깐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는 평이 따른다.
김훈은 52세의 나이에 풍륜(風輪)이라 이름 붙인 자전거를 타고서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을 누볐다. 안면도, 쌍계사, 여수, 선암사, 부석사, 섬진강, 태맥산맥 등 많은 여행지들에서 보고 느낀 김훈의 사유들이 이강빈의 사진과 함께 『자전거 여행』으로 묶여졌다.
오래전부터 이순신에 매료되었던 김훈은 이 여행의 도중 진도를 찾아간 자리에서 이순신이라는 신화를 산문으로 육화(肉化) 할 결심을 한다.『칼의 노래: 소설 이순신』이 바로 그 결실이다.
목차
책 머리에
칼의 울음
안개 속의 살구꽃
다시 세상 속으로
칼과 달과 몸
허깨비
몸이 살아서
서케
식은땀
적의 기척
일자진
전환
노을 속의 함대
구덩이
바람 속의 무 싹
내 안의 죽음
젖냄새
생선, 배, 무기, 연장
사지에서
누린내와 비린내
물비늘
그대의 칼
무거운 몸
연보·해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