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이 오랜 침묵 끝에 선보인 소설집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얼마나 날카로워지고, 더욱 깊어졌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이 소설집에는 최근에 일어났던 일련의 굵직한 사건들과 논쟁이 문학적 수사로 녹아있다.

표제작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는 지난 7월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불붙은 '곡학아세(曲學阿世) 논쟁'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우회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의고체로 쓰여진 이 소설은 '소설가 이 아무개'의 입을 빌어 작가의 고단했던 젊은 시절의 방황과 소설가로서의 성공을 말하면서 최근 벌어졌던 모 국회의원과의 갈등도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씨의 개인전'은 저명한 조각가 황씨 밑에서 10년 넘게 '조수'로 일해온 김씨 노인이 조수를 그만두고 자신의 작업실을 마련하고 조각가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작품의 후반부의 반전이 독자의 허를 찌른다. 김씨가 연 첫 개인전의 조각작품들은 황씨의 모사품에 지나지 않으며, 정작 자신의 창작품이라고 내보인 것들은 조각품을 파고 남은 돌 부스러기에 불과했다. 작가는 이 작품의 주제를 “삶과 예술의 관련성”이라고 설명하면서 “예술은 삶과 유리된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당선. 작품에 『사람의 아들』『금시조』『영웅시대』『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시인과 도둑』『황제를 위하여』『시인』『선택』등과 소설집 『젊은날의 초상』『구로 아리랑』, 대하소설 『변경』등. 

오늘의 작가상·동인 문학상·중앙 문화 대상·이상 문학상·현대 문학상·21세기 문학상 등을 수상.

책머리에

김씨의 개인전
달아난 악령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
그 여름의 자화상
하늘 길
이문열 작품 연보